img
i
회원가입시 광고가 제거 됩니다
미국에서요 인종차별이요? 백인이 흑인 인종차별 하지만 백인 흑인이 황인종을 차별 많이 하던데
백인이 흑인 인종차별 하지만 백인 흑인이 황인종을 차별 많이 하던데 사실인가요? image
사다리를 걷어차고 가까스로 성벽에 진입한 아일랜드인과 이를 바라보는 중국인을 풍자한 만화(1882)
일찍이 미국의 백인사회는 노동자로 미국에 첫발을 내디딘 황인들을 차별했습니다. 이러한 차별은 중국인배척법이 통과된 1882년부터 2차대전기간까지 중국인-한국인-일본인 순서로 진행이 이루어졌습니다. 특히 19c말 같은 백인으로부터 멸시를 받은 아일랜드인의 중국인들에 대한 멸시가 가장 심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1960년대 이민법의 통과로 이후 중국, 한국, 일본에서 교육의 혜택을 받은 계층들이 미국사회에 대거 유입되자 각종 메스미디어에서 황인들은 "근면하고 똑똑하다"는 이미지가 쌓여지게 됩니다. 황인들 입장에서는 인정받는 기분이겠죠. 이들에게 미국은 기회의 땅이었고 미국 주류사회에 편입되고자 기를 쓰고 노력합니다. 이러다보니 여기서 소외된 흑인들의 눈에 황인들은 "인정이 없고 독하다"는 프레임이 씌워지게 됩니다.
이를 백인들의 "모범시민 프레임 만들기"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평등한 시민들'이 아닌 '모범시민들'이 존재하려면 그 반대인 '열등시민들'이 생길 수 밖에 없겠죠. 그 주인공들은 누구일까요? 바로 오랜 차별로 백인과 겸상자체가 어려운 이들...'사회구조적 모순'이라는 이면이 간과된 채 "게으르고 열등하다"는 프레임이 씌워진 흑인들이었습니다.
1991년 미국 엘에이 한인마트에 15세의 라타샤 홀린스라는 흑인소녀가 한인 두순자씨에게 등뒤로 총을 맞고 숨진 사건이 발생합니다. 라타샤 홀린스가 주스한병을 가방에 넣고 계산하러 테이블에 갔으나 두순자씨는 훔치려는 것으로 오인하여 실랑이가 벌어졌고 이는 비극적인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미국 법원에서는 두순자씨가 재범의 가능성이 없다고 풀어줌으로써 흑인들이 분노했습니다.
image
라타샤 홀린스가 쓴 시와 함께 그녀를 기념하는 벽화, 흑인들에게 91년의 사건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이로부터 1년뒤인 1992년 운전중 속도위반을 하다 경찰에 단속된 로드니 킹이란 흑인이 백인경찰들에게 집단 구타를 당해 청각을 잃는 사고가 일어나는데 가해자였던 백인경찰들은 전원 무죄로 풀려납니다. 이에 분노한 흑인들의 소요사태가 일어나자 미국 공권력은 엘에이의 백인 거주지들을 철통방어했습니다. 그런데 이후 생뚱맞게도 미국언론은 이미 1년이 지난 두순자가 흑인소녀를 살해한 영상을 메스미디어를 통해 반복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이는 흑인들의 분노의 타깃이 백인에서 한인으로 전환되는데 일정한 공헌(?)을 했고 이후 흑인들의 한인상점들을 향한 방화, 약탈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엘에이 백인 거주지를 철통방어하던 미국 공권력은 한인타운의 방어를 외면했고 결국 한인들은 자신들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직접 총을 들고 흑인들을 향해 발포했습니다. 이와 같이 흑백갈등은 백인사회에 의해 교묘하게 흑황갈등으로 치환됬다는 비판을 받고 있으며 이 사건은 한인과 흑인 사이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습니다.
image
1992년 LA 폭동 당시 무장한 한인
아시아계 미국인을 향한 범죄를 막기 위해 설립된 스톱 에이피피아이 헤이트(STOP APPI HATE)의 통계에 의하면 최근 아시안 혐오범죄의 용의자들의 75%가 백인들이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흑인이 황인을 구타하는 영상이 더 많이 보도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러한 백인주류사회의 인종차별주의는 뿌리깊은 역사를 통해 백인들의 의식속에 내면화가 되었고, 차별통치의 노하우는 보다 세련되어졌습니다. 과거 차별했던 황인들을 필요에 의해 편애하다가도 여기서 소외된 흑인들의 아우성이 들리면 교묘히 책임을 다시 황인들에게 전가합니다.
모든 것이 일장일단이 있듯이 미국의 밝은 모습의 이면에는 이러한 어두은 그늘도 함께 공존하고 있는 것입니다.